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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울기'에 해당되는 글 1건
2009.11.10 00:24
 
얼마 전 구입해 읽었던 우석훈의 88만원 세대 속편 격에 해당하는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88만원세대 새판짜기』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글월을 요약하여 올려본다. 개인이 쓴 온전한 글이지만, 적절히 생략하고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살렸다.  아울러 아직 일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되어 이 글을 쓴 이에 대한 마음속의 양해를 온전한 타이핑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이 글은 책의 후반부에 실린 '20대 관찰기'로 20대 당사자 7명이 쓴 7편 가운데 한 단락이기도 하다. 다른 6명의 글보다 이 글이 특히 공명하였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완전한 자신의 얘기를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허울좋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보다 자신에 대한 부단한 성찰에 관한 진정성 어린 글이 타인의 마음도 움직이게 된다는 대표적 사례로 꼽아도 될 것 같다. 이 밖에 책에 대해 이런저런 할 말들이 약간 있지만 오늘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일이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백고은 - 웃으면서 울기 [우석훈,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88만원세대 새판짜기』, (서울:레디앙, 2009), pp.217-pp.225.]



이건 나만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아침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이힐에 발을 구겨 넣고 학교로 향한다. 전철 안, 내 무게를 가느다란 힐로 버티는 발이 아프다고 난리다. 고통을 못 견뎌 앞에 앉아서 자고 있는 어떤 사람을 흘긴다. '나보다 힘들지도 않으면서.' 속 좁은 말을 속으로 중얼거린다. 옛 중국의 여성들이 겪었던 전족의 고통과 지금 내가 하이힐을 신어 겪는 고통이 비슷했으리라는 우스운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등록금을 미처 마련하지 못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학교를 다닌 지 3년밖에 안 됐는데 내 이름으로 된 대출금만 1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휴학을 해야 하나. 교수님께 제발 장학금 좀 받게 해 달라고 사정해 볼까. 이런 생각들이 정점에 이르면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다가도 나 하나 죽는다고 해서 등록금이 내려갈까라는 생각이 들어 자살도 또 쉽게 단념하고 만다. 정말 미칠 노릇이다. 과외를 아무리 해도, 이쪽저쪽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해 봐도, 손에 겨우 움켜쥔 돈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워낙 푼돈이다 보니 차곡차곡 저축을 해 보려 해도 잘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쓸데없이 돈을 많이 써서일 거라는 자책만 늘었다. 분식집, 베이커리, 헬스클럽, 카페 알바를 거쳐거쳐 일을 해 보아도 남는 것은 '웃으면서 울기'라는 스킬뿐이다. 스펙 하나 없이, 토익 점수 하나 없이 말이다. 능력도 쥐뿔 없는 것이 감히 취직을 생각하다니!


빚이 '빛'을 앗아갈 때

친구들은 내게 쉴 새 없이 취업 얘기를 늘어놓는다. 굳이 취업이 아니어도, 누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면 자기도 연결해 달라고, 한번 알아봐 달라고 사정한다. 우리는 서로가 그리워도 쉽게 만나자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립다. 언제 날 잡아서 만나자." 이 말로 겨우 만나고픈 마음을 전한다. 그런데 전해졌을까. "우리 도대체 언제 만나니?"라는 나의 말에 친구는 "실은... 내가 돈이 없어서 만나기가 좀 그래."하며 그제야 속사정을 털어놓는다. 어딜 가나 돈이 숭숭 빠져 나간다. 사실 만날 시간도 부족하다. 결국은 "나도 그래."라고 말할밖에.
(중략....)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그 광포한 빗줄기에 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아스팔트가 깊이 패일 것만 같다. 근데 우산이 없다. 엄마더러 우산 갖고 마중 나와 달라고 하고 싶지만, 핸드폰은 정지됐다. '미납요금... 미납요금... 미납요금시 수신이 정지될 수도 있사오니...' 퍼뜩 우스운 생각이 든다. 최근 어느 통신사에 인턴을 지원했었다. 결과는 '함께하고 싶었으나, 정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였다. 정말, 우리는 함께할 수 있었을까? 혹시 내 미납요금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 건 아닌가요? 참으로 낭만스럽게, 나는 여름비를 흠뻑 맞고 집에 돌아왔다.
(후략.....)


빚도 경쟁도 '뿅' 사라진다면

내 동생은 어딜 가나 자신만만하고 생기발랄했다. 공부도 무척 잘해서 졸업할 때 경기도 지사상도 받을 정도였다.
(중략......) 근데 웬걸,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고, 동생 또한 간절히 바랐던 서울대학교에서 동생을 똑 떨어뜨린 것이다. (중략.....)
차선책으로 동생은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지방 교대에 입학했다. (중략.....) 동생은 교대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중략.....) 결국 동생은 다시 수능을 준비하게 되었다.  (중략.....) 
가끔 동생과 나란히 누워 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며 꽤나 다정하게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는다. 이때 금기시되는 화제가 있는데, 바로 '돈'얘기다. 얘기해 봤자 서로 맘만 아프다는 걸 이젠 안다. 도란도란 말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잠잘 시간이다. 행복한 순간이다. 하지만 내일 또다시 아침이 오는 것은 너무나 괴롭다. 타고난 생기발랄한 성격 때문인지 몰라도, 동생은 내게 어서 자라며 귀여운 한마디를 던진다. "뿅!" 그 순간, 우리를 힘들게 하는 빚, 경쟁도 모두 '뿅'하고 사라졌으면.


"사시 되면 다 해결돼!"

(전략.....)
어느 날, 남자친구와 남자친구의 친구들을 호프집에서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중에 실연을 당한 남자친구의 후배도 있었다. 술이 취하자 남자친구 후배는 슬픔에 취해 눈시울을 붉혔는데, 이를 본 남자친구의 또 다른 친구들이 이상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사시 되면 다 해결돼." 법대생인 남자친구의 친구들은 오직 '사시'에 목을 매는 것 같다. 사법연수원생인 선배는 후배들에게 이런 자랑을 한다. "결혼정보회사에 가입도 안 했는데, 가입하라고 알아서 알아서 전화가 오더라고..." 그러니까, 실연당했을 때는 사시에 붙으면 슬픔도 사라지는 거구나, 사랑과 사시는 같은 '사'자니까. 등가교환이 가능한가요?
(중략.....)
우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대학 동기와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생글생글 잘 웃는 그녀에게 남자친구와 연애는 잘되고 있는지 안부를 건넸다. 나이 차가 꽤 나는 남자친구를 둔 언니는 여유가 만만했다. 여유도 있고 뭐든지 야무지게 잘 해내는 모습이 부럽다고 하니까 언니는 꽤나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남자친구 앞날이 창창하다 보니까, 나도 많이 안정된 것 같아."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남자친군 창창, 내 인생도 반짝?


친구야, 괜찮아

아버지는 늘 내게 '네 주제에 맞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신다. 내 주제가 뭔지 난 아직 잘 모르겠다. 한때 내겐 꿈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한테는 입도 벙긋하기 싫었다. 또 '네 주제에...'라는 말이 튀어나올까 봐. 그런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공무원과 결혼하는 게 제일이라고 하셨다. 나더러도 9급이든 10급이든 공무원 공부를 시작하라고 하셨다.
(중략....)
나에게도 싱그러운 꿈이 있고, 마음껏 웃고 떠들었던 20대의 단편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즐거웠고, 스펙 따윈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그 시절은 어디로 날아가 버린 걸까. 그건 또 왜지?
먼저 졸업을 앞둔 한 친구는 내게 이런 푸념을 했다.
"나는 정말 소소한 즐거움에 행복해 하면서 살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런 게 야망도 없고 정신없이 노는, 현실에 대해 전혀 무감각한 철부지 같은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거야. 진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수업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 배운 것이 아무 소용도 없는 것처럼 되어 버렸어. 배우고 싶지도 않던, 그 있잖아 물건을 어떻게 잘 팔 것인가 궁리하는 마케팅 뭐 그런 거, 나를 어떻게 상품화할지를 가르치는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지 못한 게 참 바보스럽게 되어 버렸고. 취직하기가 어려우니까. 다들 경영학을 전공했거나 복수전공한 사람들을 선호하잖아. 어쨌든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데에 시간을 낭비해 버린, 토익 점수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 나는 얼빠진 애가 돼 버린 거야."
친구야, 괜찮아. 너의 마음속에 있는 그 그리움을 나도 갖고 있어. 그러니까, 함께하자, 마음 놓고 웃을 수 있고, 소소한 즐거움에 행복해 했던 그 시간들을 다시 불러내면 돼. 할 수 있어. 우리를 조여 왔던 끈들을 하나씩 녹여 버리자. 우리의 간절함으로.


* 백고은(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고은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로 무엇이 있을까?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맞는 말이고 여기에 가난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훗날 그녀가 자신의 청년기를 돌아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단어가 '빚 독촉'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등록금 빚에 부모의 빚까지 언혀져 2009년 대한민국이라는 공간 속에서 허덕거리며 살아가는 청춘은 고은과 고은의 동생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공부와 연애를 아주 열심히 하며, '가난한 연인'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연애하는지 보고 싶다면 백고은 커플을 보면 된다. 당장 서 있는 것도 어렵고,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도 버거워 '정의롭게'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노라고, 즐겁고 명랑하게 살고 싶지만 그렇게 잘 안된다고 그녀가 말할 때마다,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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